[역사 잡설 21] 중국의 황제를 꿈꾼 여인... 강청 (장칭, 江靑)
역사에는,
권력자의 부인이
뒤에서 권력을 조종하며 실권을 휘둘렀던 사례가
무수히 많습니다.
더러는,
남편의 권력을 자기가 이어받고자 획책하기도 하고,
심지어 남편을 "제거"하고 자신이 권력을 탈취하고자 했던 여인도 있지요.

[배우 출신의 영부인.... 강청(江靑).
사진 출처 : www.daum.net (이하 같음) ]
모택동(毛澤東)의 4번째 부인 강청(江靑, 1914~1991)은
산동성의 가난한 가정에서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본명은 이청운(李靑雲).
가출 후 상해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으며, 여러 영화에도
출연하였다.
공산당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투옥되기도 했으며,
난잡한 남자관계 등 나쁜 소문이 많았는데, 감옥에서
간수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거나, 마약에 손을 댔다는 등이 대표적이다.
강청은 2 차례 결혼했으나 2 번 모두 이혼했다.
결국 배우 활동을 접고, 1937년 옌안으로 이사했다.
당시 3번째 부인과 별거 중이던 모택동의 눈에 들어
그와 바람을 피우다 결국 결혼하게 된다.
이 때 모택동의 주변인물들은 강청과의 결혼을 모두
반대하였으나, 모택동의 고집을 꺾지 못하게 되자,
다만 강청을 "정치에는 참여시키지 않는다" 라는
다짐을 받고 양해하였다고 한다.
(오로지 내조만 할거다!)
모택동과 강청 사이에 자식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식 대신 여러 마리의 개를 키웠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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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강청은 '사형 및 사형집행유예 2년' 을 선고받게 된다..
그러다 2년 뒤인 1983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여러 차례 자살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1991년 5월 14일 새벽,
77세의 강청은 교도소 내에서 양말로 목을 매어 자살.
5월 18일, 강청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어린 시절의 강청]
1976년 9월 18일. 북경(北京)의 하늘은 잔뜩 흐려 있어서
태양조차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후 3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최대의 장례식이 될
"모 주석 추도 대회" 가 열리고
거대한 유영이 내걸려진 천안문 광장에는
상장을 두르고 흰 꽃을 가슴에 단 백만 명의 군중으로
가득 메워졌다.
사회는 당 부주석인 왕홍문(王洪文) 이 맡고,
당 제 1부주석인 화국봉(華國鋒)이 조사를 읽었다.
흐느껴 우는 소리가 번져 나가는 가운데
문화대혁명 당시 애국가처럼 불렸던,
모택동을 찬양하는 <동방홍(東方紅)>의 멜로디가
울려 퍼지며 대회를 마무리지었다.
"동방의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중국에 나타난 모택동(毛澤東)......"
모택동을 추도하는 공식 행사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공백 상태로 남아있는 권력을 둘러싼
투쟁이 본격화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다음날인 19일 , 모택동의 미망인인 강청은 화국봉에게
전화를 걸어 긴급히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소집할 것을 요청했다.
일개 정치국원이 회의를 소집할 권한은 없다.
그러나 강청은 언제나 회의석상에서 하는 습관처럼
주역처럼 행동했다.
화국봉이 소집 이유를 물어도
강청은 "미리 말할 필요 없다."고 대답하며
참석자까지 지정해 주었다.
'섭검영 원수는 편찮으시니 출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왕홍문, 장춘교(張春橋)는 물론,
나와 요문원(姚文元)은 참석해야 해요."하며,
후에 화국봉 등에게 체포당하는 "4인방" 전원을
거명하고 나서 "모원신(毛遠新)도 참석시키세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당 부주석인 섭검영을 참석시키지 않고,
모택동의 조카라고는 하지만
모택동 판공실의 주임에 지나지 않은데다
정치국원도 아닌 모원신을 추가하라고 한 후,
전화는 찰칵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 "모택동 비록(상)" , (산케이신문 특별 취재반 편, 임홍빈 역, 2001년 문학사상사), 77 ~ 78쪽]

모택동이 사망하기 2주 전인 1976년 8월 26일,
강청은 북경의 신화인쇄 공장,청화대학, 북경대학을 시찰하고 다녔다.
이때 <북경일보> 기자를 시켜 "강청 동지, 모택동 주석과
당 중앙을 대표해서 수도 인민을 방문" 이라는 기사를 게재하려고 했다.
이 기사는 결국 화국봉 등의 당 중앙에 의해 압수되어
한낱 부질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28일에는 사회주의 농촌 모델로 칭송되던 천진시의
소신장을 방문하여 '여성의 우위' 에 대해 논했다.
"생산을 하는 것은 여잡니다. 씨족 사회에서는 여자가
한 가문의 주인이었어요.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다면 장차 국가를 관리해야 하는 것도
여성 동지입니다.
남자는 물러서고 이젠 여자가 관리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여자도 황제가 될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 강청은 제남 부대의 중대 주둔지를 찾아갔다.
섭영렬의 저서 <강청전>에 의하면 ,
그때 강청은
"주석이 사망하면 ,나는 짐(朕 = 황제)이 되겠어요"하는
깜짝 놀랄만한 말을 했다고 한다.
(중략)
9월 2일에는.
"모계 사회에서는 여성이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역시 여황제가 나타나서
권력을 장악해야 합니다." 하고 발언했다.
[前揭書 57~ 58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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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청은 정치적 야망이 강한 여자였으나
(비록 부부싸움은 잦았지만) 모택동에 의해 눌리워졌다.
모택동이 노쇠해지면서 서서히 마각이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그가 사망하자 마자 노골적으로 국권을 쥐려하다가
파멸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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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여자는,
대체로 공동의 이익이나 국가의 이익 보다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이건,
남자보다 약한 여자가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본래부터 그렇게 창조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야심이 강한 여자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남자와 결혼하여
적절한 "제어"를 받으며 산다면
큰 "사고"를 치는 건 막을 수 있겠지만
남편이 좀 부족하다거나
여자 혼자 되거나 하면,
그야말로 "아무도 못 말리는" 상태가 되기도 하는 게다.
또한,
여자의 "아름다워지려 하는 욕망" 은
거의 동물적인 본능에 가깝다고 보겠다..
(그래서 화장으로 열심히 꾸미고....
화장술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은
성형을 통해 '재창조' 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는 예뻐지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남자는 이런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 메커니즘은,
종족을 보전시키기 위해
조물주가 미리 프로그래밍해 놓은 것이라 보여진다.
그리 해놓지 않았다면,
인류는 벌써 오래오래 전에 멸종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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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사로잡혀
비참한 결말을 맞은 여인들이 떠오른다...
측천무후, 양옥환(양귀비), 자희(서태후), 정난정, 최순실, 박마리아 ......

20250414
SHINING I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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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모택동 비록" 은,
오랜 세월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현재는 은퇴하여 분당에 은거중인 필자의 형님 (신동철)이
이사를 앞두고 서재를 정리하면서
오래 소장하였던 아까운 책들을
저에게 물려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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