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열하의 피서산장 (熱河의 避暑山莊) <제4편>[여행 이야기 51]

꽃을 든 남자 2017. 11. 7. 13:06

 

                       열하의 피서산장 <제4편>

 

그렇습니다.

 

내부의 모순에 의해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재촉한 명나라는

중원의 본 무대에서 퇴장했어도

 

주자학적 의리론에 물든 수천 리 동쪽나라 조선의 선비들에 의해

<후삼경자>라는 기괴한 형태의 연호로 남아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세뇌란 참 무서운 것이군요.)

 

어쨌든 이제 중원의 주인은 "오랑캐" 인 청나라가 되었고

이전까지 "명나라 백성" 이었던 민초들은 이제 "청나라 백성" 으로 변했습니다.

 

중국 왕조시대의“백성”이란 존재는 황제의“소유물”에 불과하고,

온 천하(天下)는 황제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자원(資源)입니다.

 

그러기에, 왕조가 바뀐다는 사실을 -- 백성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까지 수천 년간 그래왔듯... “그저 또 다른 새 나라가 되었다고 하니 이제는 다른

관리가 와서 세금을 수탈해 가겠구먼... 지난 왕조보다 더한 놈만 안 오면 다행“ 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인 것입니다.

 

하지만 17세기 들어... 중원(中原)의 지배자가 명(明)에서 청(淸)으로 넘어가면서

일반 백성들이 겪는 변화는... 이제까지와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명(明)대와 청(淸)대 초기의 궁정 경비를 비교한 표를 봅시다.

 

  ** 몀,청 왕조의 황실 경비 비교

 

 

항 목

명 왕조

청 왕조

(1690년 통계)

감소율

(%)

궁녀 수

9,000 명

134 명

(자녕궁 제외)

- 98.5

환관 수

10만 명

500 명

- 99.5

1년 땔감 양

1,400만 kg

35,000 kg

- 99.8

1년 목탄 사용량

600만 kg

50만 kg

- 91.7

1년 금.은 소비량

97만 냥

없음

- 100

1년 광록시 예산

24만 냥

3만 냥

- 87.5

1개월 화장품 비용

40만 냥

없음

- 100

하루 총 지출액

1만 냥

35 냥

- 99.7

 

* 자료 출처 : 보양(柏楊) 저, 中國人史綱(한글판:맨얼굴의 중국사) 제5권

 

294년 간 존속한 명나라의 경우, 정식 황제 17명 중 제대로 된 황제는 몇 안됩니다.

대다수의 황제가 무능하거나, 사치와 향락에 젖어 (심지어는 아편까지) 국사(國事)를 

내팽개치고... 나라는 환관들의 손에 놀아납니다.

부패한 관리들의 수탈로 인해 백성들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런 연유로, 대만의 역사가 보양(柏楊)선생은, 명대 황제 대부분을 “망나니”라고

폄하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태조(누르하치) - 태종(홍타이지) - 세조 복임(福臨)으로 이어지는 청 초기의 황제들은

몸소 검소한 생활로 신하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무예와 학문 연마에 힘씀으로서,

300만명 밖에 안되는 만주족이 중원 전체를 평정하고 2억이 넘는 인구를 다스리는

중앙집권적 국가의 통치 기반을 구축합니다.

 

더우기, 이러한 시기에 강희(康熙)라는 걸출한 황제가 나와 서북 신강(新疆) 및

서장(西藏, 티벳)을 아우르는 광대한 강역을 개척하고 안남(安南), 조선(朝鮮),

유구(琉球)까지를 번속(藩屬)으로 거느리는... 명실상부한 대국(大國)을 건설합니다.

 

[중국사 전체에서 보기드문 명군(名君)으로 손꼽히는 청 제 4대 황제 (聖祖 康熙帝)의 밀랍 인형]   

 

피서산장(避暑山莊)은 이런 시기에 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소위 강건성세(康乾盛世 - 강희~건륭대의 전성기)를 거쳐오면서... 총 면적 564만 제곱미터

규모(북경 고궁의 8배)로 조성된 중국 최대의 황가원림(皇家園林)입니다.

 

화북 평원과 내몽고 산지 사이의 연산산맥(燕山山脈) 너머

북방 유목민족이 (중원을 침탈하려면) 필수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길목 요충지에

행궁과 수렵장을 지어놓고 여름에는 피서를 구실로 머물면서 정무(政務)를 보며,

가을에는 사냥을 명목으로 수천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대규모 수렵행사를 벌임으로서

청 황실의 건재를 과시하는 전방 군사 전초기지의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건륭제일전쌍록도(乾隆帝一箭雙鹿圖), 79세의 건륭제가 내몽고 목란위장(木蘭圍場)

수렵장에서, 화살 한 방으로 두 마리의 사슴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그린 것임. ]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하루종일 산장을 거닐다가, 어두워질 무렵 만수원(萬樹園) 뒷뜰을

가로질러 나가... 걸어서 숙소로 돌아옵니다.

 

 

    제9일 : 10월 7일 (토) 承德 磬錘山, 外八廟

 

     05시 기상, 07시 호텔조식.

    

     어제 하루중일 산장을 서성거렸던 게 좀 힘겨웠던 모양입니다.

     12시까지 딩굴딩굴 하면서 휴식/독서.

     13시 실실 일어나서 시내버스로 경추산경구(磬錘山景區)로 출발.

     (露露花園 - 索道站)

 

[경추봉 표지석 앞에서...(직찍)]

 

[경추봉 올라가는 삭도... 왕복 44분이 소요된다. (요금은 왕복 80위안)]

 

 

[삭도 정류장 부근에서 본 경추봉... 상제(上帝)의 엄지손가락이라능... ]

 

[해발 596m 경추산 위에 솟은 바위 ... 높이 38.3m

 윗부분 직경 15.04m, 아랫부분 직경 10.27m (윗부분이 더 굵다!)]

 

     16시 하산 완료.

     17시 외팔묘(外八廟)관람.

 

          <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廟), 수미복수지묘(須彌福壽之廟)>.

 

     108로 시내버스 만수원(萬樹園) 하차, 6로 시내버스 환승하여 호텔 도착.

     군만두집에서 석식.

 

 

    제10일 : 10월 8일 (일) 承德 - 秦皇島

 

     05시반 기상, 07시 호텔조식.

    

     이제부터는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입니다.

 

     08시 퇴방 / 시내버스로 승덕 기차동참(氣車東站) 도착.

     09시 40분발 진황도행 고속버스 승차.

     13시 10분 진황도 버스터미널 도착.

 

     15시 택시로 진시황 구선입해처(求仙入海處) 도착. (입장료 반표 23위안)

 

 [진황구선입해처 (秦皇求仙入海處) 초입의 마차 동상]

 

 [불로장생약을 간구하는 진황 영정 (秦皇 瀛政) 상]

 

     17시 한식당 오륙도(五六島)에서 점심 겸 저녁식사.

     18시 황금해변 산책.

     19시 리다오(麗島)주점 입실.(238위안)

 

 

 

                   -- 제5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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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09:42 new
여진(만주)족 출신으로서 가장 훌륭한 중국의 왕조를 이룩한 배경에는
거란의 요나라/여진의 금나라/몽골의 원 등 중원의 한족이 아닌
오랑캐 민족들이 건국한 나라들의 흥망 경험이 토대가 된 것이라 보고있다.

요나라는 정복한 땅과 민족들을 제도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노력하다가 사라지고

금나라는 요나라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잘 나가다가 더 쎈 몽골에 의해 사라지고.

유목민으로서의 기본을 잃어 버리면 망한다는 징기스칸의 유언도 중원을
지배하고 보니 향략과 편안한 생활에 물들어 원도 사라지고.

명왕조의 또라이 행태도 보았고.

청(후금)은 이런 걸 거울삼아 가장 훌륭한 왕조를 만든 것이라고들 한다
 
결국 "역사를 거울로 삼았다" 는 말임... (구래서 역사공부가 중요한겨~~ㅋㅋ)
 
 
김성환 09:45 new
경추봉은 엄지가 아니라 거시기 같이 보여서 3컷이나 올린겨? 표지석까지 4컷이네.

진황의 마차는 언제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로마전차 같은 서구조각풍의 냄새가 나네.....
 
근자에 세운거지... 쬐끄만 건덕지라도 있으면 거창한 관광지로 개발하여
입장료 수입올리는 데 귀재인 중꿔런들...